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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출 알선만 했는데 대신 빚 갚으라는 금융사…대법 "무효"

연합뉴스 / 2023.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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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금 1천만원짜리 알선업체에 '남의 빚' 10억원 떠넘겨
대법 "알선업체에 무조건적 연대보증 부과는 부당"
대법원
[연합뉴스 자료사진]
대출 이용자를 알선해주면 일정 수수료를 주는 대신 상환 기한이 넘어가면 알선자가 무조건 대출금을 모두 떠안게 한 위탁계약은 부당한 거래라 무효라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수산물업체 A사가 금융업체 B사를 상대로 "부당이득금을 반환하라"며 낸 소송에서 B사의 손을 들어준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2일 밝혔다.
재판부에 따르면 A사와 B사는 2014년 대출업무 위탁 계약을 체결했다. A사가 수산물 담보 대출 상품을 이용할 업체들을 알선하면, B사가 대출금 중 1%를 업체들로부터 받아 A사에 0.5~0.8%를 수수료로 주기로 했다.
누구에게 대출해줄지 결정할 권한은 B사에 있고 A사는 이의 제기를 할 수 없었다. A사가 알선·위탁업무 수행 과정에서 고의나 과실로 B사에 손해를 끼치면 배상해야 했다.
문제는 추가 약정이다. A사는 대출 때마다 연대보증을 서야 했으며 돈을 빌린 업체들이 상환 기한을 넘기면 '무조건' 대출금을 대신 갚고 담보를 매입할 의무도 졌다.
알선 담당 A사와 B사는 체급에서 확연히 차이를 보였다. A사는 이 계약 직전인 2014년 자본금 1천만원으로 설립됐는데 1997년부터 영업한 B사는 자본금 400억원이 넘는 중견 업체였다.
계약에 따라 A사가 2015~2016년 알선해 B사의 대출을 받은 업체는 모두 6곳에 대출금은 200억~300억원이었다. A사는 대출금을 상환하지 못한 업체들 대신 B사에 원리금 10억7천여만원을 대신 갚았고, 창고보관료로도 1억5천여만원을 썼다.
참다못한 A사는 B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A사는 "우리 회사는 오로지 B사와의 거래를 위해 설립된 업체"라며 "B사가 고의·과실과 상관없이 무조건적인 연대보증과 담보물 인수 책임을 부담케 하는 등 거래상 지위를 남용했다"고 주장했다.
대법원은 두 업체의 계약 가운데 추가 약정 부분을 무효로 봐야 한다고 결론내렸다. '선량한 풍속이나 사회질서에 위반한 사항을 내용으로 하는 법률행위는 무효로 한다'는 민법 103조가 근거다.
재판부는 "A사는 대출 이용자를 선별·알선할 의무만 부담할 뿐 대출 계약 체결이나 심사·약정에 관여할 아무런 권한이 없고 B사만이 독자적·최종적 결정권을 갖는다"며 "이용자의 채무 불이행으로 대출금 회수가 어려워짐에 따른 위험을 부담할 주체는 원칙적으로 B사"라고 지적했다.
담보물 검수·평가를 해야 하는 A사가 주의 의무를 다하지 않아 B사가 손해를 입었다면 A사에 배상 책임이 있겠지만, 추가 약정은 B사에 무조건적인 연대보증·대위변제·담보 매입 의무를 부과해 부당하다는 취지다.
대법원은 "원심(2심)은 A사·B사의 역할과 권리·의무관계의 내용, 변동 경위, 지위와 경제력의 차이 등을 면밀히 심리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서울=연합뉴스) 정성조 기자 xi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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